[홍성호 기자의 열려라! 우리말] 유명세는 '타는' 게 아니라 '치르는' 거죠

입력 2017-05-15 09:02  

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@hankyung.com


'유명세(有名稅)'는 '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어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'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. 즉 '유명하기 때문에 치르는 불편'을 말한다. 세금에 빗대 만든 조어다.


‘계절의 여왕’이라는 5월에는 전국적으로 축제가 많이 열린다. 튤립축제 철쭉축제 등 각종 봄꽃 축제를 비롯해 별빛축제 나비축제 모래축제 등 다양한 축제가 마련돼 상춘객을 맞이한다. 이런 축제를 소개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‘유명세’다. 대개 ‘유명세 탄 명소’ ‘유명세를 떨쳐’ ‘유명세가 높아’ 식으로 쓰곤 한다.

‘불편함’을 세금에 빗댄 조어

우리말에서 유명세가 쓰인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. 대략 1960년대 들어서로 보면 될 것 같다. 북한 사회과학출판사에서 1992년 펴낸 <조선말대사전>에는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원래부터 우리가 쓰던 말은 아니다. 우리 사전에는 한글학회에서 1965년 간행하고 1987년 개정판을 낸 <새한글 사전>에도 유명세는 보이지 않는다. 하지만 1990년대 초 나온 <금성판 국어대사전>과 한글학회 <우리말 큰사전>에서는 이 말을 단어로 올렸다.

‘그들이 유명인이기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이른바 ‘유명세’란 것은 매스컴의 선전으로 그들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폭로되었다는 사실로써 충분히 지불되었고 응징되었다고 봐야겠다.’ 1962년 10월 말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희대의 간통사건이 터졌다. 여기서 ‘그들’은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남녀 배우다. 지금은 폐지됐지만 간통죄를 엄하게 묻던 그 시절 이 사건으로 인기정상의 이들 최모·김모씨가 곧바로 구속됐다. 하루 평균 8면을 발행하던 당시 경향신문은 사건 직후인 11월5일자에서 거의 한 면을 털어 후속보도를 할 정도였다. 그 한 대목에 ‘유명세’가 나오는데, 이것이 언론보도에 등장하는 첫 사례다.(네이버 검색 기준)

‘유명세(有名稅)’는 ‘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어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. 즉 ‘유명하기 때문에 치르는 불편’을 말한다. 세금에 빗대 만든 조어다. 가령 이름이 널리 알려져 본의 아니게 사생활을 침해받는다든지, 공항에서 극성팬들에게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든지 하는 것을 말해 ‘유명세를 치르다’라고 한다.

불편하거나 곤혹스러운 상황에 쓰는 말이라 부정적인 의미자질을 갖는 말이다. 세금은 치르거나 내거나 뒤따르는 것이니 ‘유명세를 치르다’ ‘유명세를 톡톡히 내다’ ‘~하는 데 유명세가 따르다’처럼 쓴다. 유명세는 세금이긴 하되 돈으로 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부담하는 세금이다. 유명세가 많은 사람은 불편스럽긴 하겠지만 그래도 ‘즐거운 비명’을 지르는 셈이다.

‘치르다, 내다’와 어울리는 말

이 말이 언젠가부터 좀 이상하게 쓰인다. 아마도 한자의식이 흐려진 탓에 유명세의 ‘세(稅)’를 세력을 뜻하는 ‘세(勢)’로 알고 쓰는 것 같다. ‘최근 야시장이 유명세를 타면서…’ ‘다문화 사찰로 유명세를 떨친…’ ‘유명세 덕분에…’ 같은 게 그런 것이다. 이런 쓰임새는 첫째, 유명해서 치르는 불편이나 곤혹스러움을 나타내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. 유명세를 쓸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. 그냥 유명하다 또는 유명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. 둘째, 이마저도 유명세를 떨치느니, 타느니, 유명세가 높다느니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유명세의 뜻을 바르게 쓴 게 아니다. 유명세가 아닌데 유명세를 썼고, 그것을 명성이나 세력 정도의 뜻으로 썼으니 두 번에 걸쳐 우리말을 비튼 셈이다. 유명한 것은 그냥 유명하다고 하면 된다. 그것을 좀 속되게 강조해 이르고 싶으면 ‘유명짜하다’라고 한다. 금성판이나 한글학회에서 펴낸 국어사전에 이 말이 나온다.

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@hankyung.com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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